안녕하세요. 오늘은 책 한 권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고,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세계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때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던, 하지만 우리 시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 A Day in the Life of Abed Salama: Anatomy of a Jerusalem Tragedy(국내 번역서가 아직 없는 관계로, 이 독서 노트에서는 이하 '아베드 살라마의 하루: 예루살렘 비극의 해부')라는 제목으로 칭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의 독서 노트입니다. 저도 한 인간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릅니다. 저자는 2012년 예루살렘 인근에서 발생한 유치원 통학 버스 전복 사고라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두고, 그날 하루의 타임라인과 수십 년에 걸친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를 촘촘하게 직조해 냅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날, 유치원생들을 태운 버스가 화염에 휩싸였고, 그 구조 과정에서 드러난 참혹한 현실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죠. 이 책은 단순히 스쿨버스 사고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을 넘어, 그 사고가 발생하고 수습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조적인 모순과 아픔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저자가 그려낸 예루살렘의 풍경은 우리가 뉴스에서 보던 단편적인 갈등이 아니라, 숨 막히는 일상의 억압과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애가 뒤섞인 복잡한 실타래였기 때문입니다. 이 독서 노트에서는 저자가 아베드 살라마라는 인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이 비극이 왜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예루살렘의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장벽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들여다보려고 해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 사회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존엄을 동시에 묻는 이 이야기의 압도적인 몰입감과 통찰력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네이선 스럴의 저작 아베드 살라마의 하루는 단순한 르포르타주를 넘어선 하나의 거대한 사회학적 단면도이자 고통스러운 인간의 기록입니다. 이 책을 읽고 독서 노트를 남기게 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뉴스로만 접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실제 개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비극으로 발현되는지를 이토록 처절하게 그려낸 작품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고 난 뒤 가슴을 짓누르는 먹먹함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글은 왜 구조 대원들은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아베드는 불타는 버스 안에 있는 아들을 구하러 달려가는 과정에서 검문소와 신분증 문제로 고통받아야 했는지, 그 구조적인 모순을 파헤치는 과정입니다. 자, 그럼 아베드의 그 긴 하루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1부 세 번의 결혼: 아베드 살라마의 개인사를 통해 본 팔레스타인 사회의 복잡한 단면
책의 1부인 '세 번의 결혼'은 제1장부터 제6장까지 이어지며 주인공 아베드 살라마의 개인적인 삶을 깊이 파고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아베드의 세 번의 결혼은 단순히 그의 연애사나 가족사를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회의 전통, 가부장적 질서, 그리고 점령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제약받고 굴절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회학적 텍스트입니다. 네이선 스롤은 아베드의 사랑과 결혼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공동체 내부의 역학 관계와 그들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절묘하게 엮어냅니다.
이야기는 아베드의 청년 시절, 첫사랑 가즐(Ghazl)과의 에피소드로 문을 엽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그들의 순수한 사랑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하지만, 집안 간의 해묵은 갈등과 사회적 반대로 인해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내부의 부족주의와 전통적인 관습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옥죄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아베드는 결국 가즐을 포기하고 부모가 정해준 상대인 아스마한(Asmahan)과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지만,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은 불행으로 점철되고 결국 이혼으로 끝납니다. 이 과정에서 아베드가 겪는 고초는 당시 팔레스타인 남성들이 겪어야 했던 가문의 명예와 개인의 행복 사이의 갈등을 대변합니다.
작가는 아베드의 개인사를 따라가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점령에 맞서 돌과 시위로 저항했던 대중 봉기인 1차 인티파다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처음으로 서로를 인정하며 평화를 약속했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한계를 드러낸 오슬로 협정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깔아 둡니다. 아베드가 젊은 시절 돌을 던지며 저항했던 기억, 이스라엘 감옥에서의 고문과 심문, 그리고 출소 후 겪어야 했던 무력감은 그가 왜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가족과 생계에만 집중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특히 이스라엘 보안 당국에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겪은 후 그는 '보안 사범'이라는 딱지와 함께 녹색 신분증(Green ID)을 받게 되는데, 이는 그의 인생 경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책의 핵심 테마 중 하나인 '신분증 시스템'과 거주지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아베드가 거주하는 아나타(Anata)는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해 분리 장벽에 둘러싸여 있고 이스라엘 정착촌과 인접해 있어 정치적 긴장이 매우 높은 곳입니다. 서안 지구 거주자로서 녹색 신분증을 가진 아베드는 특별 허가 없이는 예루살렘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습니다. 반면, 예루살렘 영주권자인 파란색 신분증(Blue ID) 소지자는 비교적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합니다. 아베드의 두 번째 결혼, 즉 현재의 아내이자 사고로 잃은 아들 밀라드(Milad)의 어머니인 하이파(Haifa)와의 결합 과정은 이러한 신분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혼조차 신분증 색깔에 따라 전략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며, 부부가 함께 살 수 있는지, 자녀가 어떤 권리를 가질지가 이 플라스틱 카드 한 장에 의해 좌우되는 비극적인 현실이 1부에서 낱낱이 그려집니다.
검문소, 통행 금지, 가택 수색과 같은 일상적인 폭력 속에서 아베드는 점차 현실적인 가장으로 변화해 갑니다. 그는 이스라엘 통신회사 베제크(Bezeq)에서 일하며 유대인 정착촌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점령 시스템의 인프라를 구축하며 생계를 꾸려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아베드를 영웅화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은 채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그려냅니다.
결국 1부 '세 번의 결혼'은 아베드 살라마라는 인물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성장 드라마이자, 뒤이어 벌어질 비극적인 사고가 왜 그에게 더욱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배경이 됩니다.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가족, 어렵게 꾸린 가정,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밀라드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하게 됨으로써, 독자는 통계나 뉴스로만 접했던 팔레스타인 문제를 피와 살이 있는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베드가 사는 아나타(Anata)는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분리 장벽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이스라엘 정착촌과 인접해 있어 정치적 긴장이 매우 높은 곳입니다.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해요!
2부 두 건의 화재: 교차되는 과거와 현재, 다가오는 재앙의 그림자
제7장에서 제11장에 이르는 2부 '다가오는 재앙의 그림자: 두 건의 화재'는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는 구간입니다. 저자 네이선 스롤은 시간의 축을 교묘하게 비틀어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고 당일을 교차 편집하는 방식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다가올 비극을 예감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제목인 '두 건의 화재'는 물리적인 화재 사건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아베드의 삶을 태워버린 두 번의 큰 위기이자 정치적 갈등의 불씨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사고 당일 아침, 아이들은 소풍에 들떠 있고 부모들은 도시락을 챙겨 배웅하는 평화로운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평온함 뒤에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는 도로, 즉 자바 검문소 인근의 위태로운 교통 상황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 쏟아지는 트럭들, 검문소로 인한 병목 현상은 운전자들에게 지옥과도 같으며, 저자는 이 도로를 마치 비극을 잉태한 괴물처럼 묘사합니다. 이 도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통로이자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함정입니다. 버스 기사와 인솔 교사들의 시점을 통해 전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비 젖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진동은 곧 닥쳐올 충돌과 화염의 공포를 더욱 배가시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비극은 순식간에 닥쳤습니다. 빗길에 미끄러운 자바 검문소 인근 도로에서, 마주 오던 대형 세미트레일러 트럭이 중심을 잃고 중앙선을 침범했습니다. 잭나이프 현상으로 꺾이며 미끄러져 들어온 트럭의 육중한 차체는 피할 곳 없는 좁은 도로 위에서 아이들이 탄 스쿨버스를 정면으로 들이받았습니다. 그 끔찍한 충격으로 버스는 도로 위에서 전복되었고, 충돌 직후 낡은 차체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며 거대한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 충돌과 화염의 공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참사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이 끔찍한 사고가 우연히 발생한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 안전 불감증과 인프라 방치의 결과임을 드러내기 위해 과거의 안전사고들을 소환합니다. 예루살렘 인근, 특히 분리 장벽에 의해 격리된 구역들은 오슬로 협정에 의해 A, B, C 구역으로 나뉘어 복잡한 관할권 문제에 얽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제를 받지만 행정 서비스는 방치된 C 구역과 같은 법적 사각지대에서 주민들의 안전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과거 화재 때 소방차가 제때 도착하지 못해 집이 전소되었던 에피소드나 돌을 던지다 사살된 소년, 검문소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노인의 이야기 등은 이번 스쿨버스 사고에서도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될 것임을 암시하는 예고편과 같습니다.
2부가 진정으로 탁월한 점은 사고 자체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순간 개입되는 외부적 요인들을 지적하는 데 있습니다. 사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할 소방차와 구급차는 관할 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보안상의 이유로 지체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측 구조대는 장비가 열악했고, 이스라엘 측 구조대는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불타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밖에서는 관할권과 허가증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며,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실체입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 개선할 수 있었던 도로, 배치할 수 있었던 안전 요원들의 부재는 독자에게 깊은 답답함과 분노를 안겨줍니다.
이러한 비극의 구조 속에서 개인의 체험은 더 넓은 역사적 맥락으로 확장됩니다. 특히 사고 현장을 지나다 구조에 동참하게 된 UNRWA(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 의사 후다 다부르의 사연은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불타는 버스를 보며 과거 튀니지에서 겪었던 PLO 본부 폭격 사건과 시신 수습의 트라우마를 떠올립니다. 작가는 후다를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재난'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반복되고 누적되는 고통임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저자는 아베드 살라마의 심리 묘사에 집중합니다. 사고 소식을 듣기 전 그가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과 일상의 고민들은 사고 발생 직후의 충격과 대비되어 극적인 효과를 냅니다. 아베드는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며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자신이 팔레스타인 사람이기 때문에 내 아이를 구하는 과정조차 순탄치 않을 것임을 말입니다. 결국 2부는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첫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두 건의 화재가 어떻게 물리적 재난과 정치적 재난을 결합해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 등장인물 | 역할 및 배경 | 비고 |
|---|---|---|
| 아베드 살라마 | 밀라드의 아버지, 베제크 직원 | 녹색 신분증 소지자 |
| 후다 다부르 | UNRWA 의사, 사고 현장 구조자 | 과거 전쟁의 트라우마 |
| 살렘 | 후다의 동료, 구조 활동 참여 | 늑장 대응에 분노 |
| 울라 줄라니 | 유치원 교사 | 아이들을 구하다 사망 |
3부 대량 사상 사고: 아비규환의 현장과 멈춰버린 구조 시스템
3부 '대량 사상 사고'는 이 책에서 가장 고통스럽고도 핵심적인 부분으로, 제12장 단 하나의 챕터를 통해 끔찍했던 스쿨버스 충돌 사고의 순간과 그 직후를 초 단위로 분해하여 보여줍니다. 트레일러트럭이 유치원 버스를 들이받고 버스가 전복되어 화염에 휩싸이는 그 찰나의 순간은 읽는 이의 숨을 턱 막히게 합니다. 네이선 스롤은 이 참혹한 현장을 감정적인 형용사로 포장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렇기에 그 공포는 더욱 원초적으로 다가옵니다. 사고 직후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으며, 전복된 버스 안에는 아이들이 갇혀 있었고 불길은 순식간에 차체를 집어삼켰습니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현장을 지나던 시민들과 인근 주민들은 맨몸으로 불길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창문을 깨고 아이들을 끄집어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옷에 불이 붙는 줄도 모르고 아이를 안고 뛰었던 사람, 자신의 차로 부상자들을 실어 나른 사람 등 이름 모를 영웅들의 필사적인 구조 활동을 조명하며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미한 인류애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3부의 진짜 주제는 이러한 시민들의 분투와 대조되는 구조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에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예루살렘 북쪽, 이스라엘의 통제 하에 있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도로였습니다. 신고가 접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구조대 모두 즉각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네이선 스롤은 이 지연된 시간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소방차가 언제 출발했는지, 검문소에서 얼마나 지체되었는지, 현장에 도착해서는 왜 즉시 진화 작업을 하지 못했는지를 팩트 체크하듯 나열합니다. 아이들이 불길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동안, 구조의 손길은 정치와 관료주의의 벽에 막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구조대는 관할 구역 문제와 팔레스타인 지역 진입에 대한 꺼림칙함으로 골든타임을 놓쳤고, 팔레스타인 구조대는 열악한 장비와 검문소 허가 문제로 현장 접근에 애를 먹었습니다. 이 건조한 기록들은 어떤 웅변보다도 강렬하게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과 분리 장벽이 어떻게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지를 고발합니다. 구조 시스템의 부재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을 경시하는 구조적 폭력의 결과였음을 저자는 증언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공백은 이송과 수습 과정의 대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구급차가 제때 오지 않아 부상당한 아이들은 무작위로 지나가던 시민들의 차에 실려 인근의 여러 병원으로 흩어졌습니다. 어느 병원은 팔레스타인 구역에, 어느 병원은 이스라엘 구역에 있었으며, 어떤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체계적으로 기록되지 않았고 정보는 차단되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부모들이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비극적인 숨바꼭질의 원인이 됩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온 아베드 살라마 역시 이미 통제된 현장 앞에서 아들 밀라드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미친 듯이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겪는 혼란은 단순한 행정적 미숙함이 아니라, 점령하에 놓인 피지배 민족이 겪는 일상적인 정보 소외와 무권리 상태를 대변합니다.
병원 응급실의 상황 또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밀려드는 화상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 병원에서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번호로 불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앞에서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의료진들조차 감당하기 힘든 참혹한 부상 상태에 대한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전쟁이나 테러가 아닌 일상적인 등굣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전율하게 만듭니다. 내 아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느 병원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들이 겪어야 했던 공황 상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3부는 피와 비명으로 얼룩진 현장을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추상적인 이념 전쟁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체적 고통과 죽음을 초래하는 현실임을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대량 사상 사고 챕터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사회 시스템이 특정 집단에게는 얼마나 허술하고 차별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사고 자체는 트럭 운전사의 과실일 수 있지만, 그 사고를 대참사로 키운 것은 분리 장벽과 점령이라는 정치적 환경이었습니다. 불타는 버스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상징하는 거대한 메타포가 되어 독자의 뇌리에 박힙니다. 이 챕터를 읽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사건을 단순한 교통사고로 부를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방치된 살인이자, 예고된 학살이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의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고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화재 현장과 아이들의 희생을 다루는 부분은 독자에 따라 심리적 고통을 유발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조의 지연'이라는 결정적인 문제에 봉착합니다. 사고 현장은 이스라엘의 통제를 받는 C구역(Area C)과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어요. 이스라엘 소방차와 구급차는 인근 정착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할권 문제와 보안 절차,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늑장 출동했습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우연히 지나가던 UNRWA 의료진과 장비가 부족한 팔레스타인 민방위대였죠.
책에 따르면, 이스라엘 구조대는 사고 발생 후 30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고 해요. 그 골든타임 동안 버스는 전소되었고,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살렘이 이스라엘 군인과 구조대원들을 향해 "아이 살인마들(Child killers)"이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단순한 감정적 표출이 아니라, 구조적 방임에 대한 처절한 고발입니다. 이스라엘 파라메딕 엘다드 벤슈타인(Eldad Benshtein)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그가 아이들의 가방과 신발이 널브러진 것을 보고 받은 충격 또한 교차 서술되며 비극의 입체성을 더합니다.
4부 장벽: 생사를 가르는 신분증의 색깔과 관료주의의 미로
제13장에서 제19장으로 이어지는 4부 '장벽'은 사고 이후 아베드 살라마가 아들 밀라드를 찾기 위해 겪어야 했던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장벽들을 다룹니다. 이 파트는 책의 제목이 왜 <아베드 살라마의 하루>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간입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베드는 예루살렘과 서안 지구 사이에 놓인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제도와 법의 장벽과 끊임없이 충돌해야 했습니다. 네이선 스롤은 이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적 통제 시스템을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죽음의 도로와 인프라의 격차 이야기는 사고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 즉 도로 사정과 인프라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사고가 난 곳은 이른바 '죽음의 도로'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이용하는 도로는 잘 닦여 있고 안전한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도로는 비좁고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분리 장벽으로 인해 생활권이 기형적으로 변형되면서 아이들은 이 위험천만한 도로를 통해 통학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장벽은 사고를 유발한 원인이자, 구조를 방해한 장애물이며, 사후 수습조차 가로막는 억압의 상징임이 드러납니다.
검문소와 신분증(ID) 시스템 아들이 이송된 것으로 추정되는 예루살렘의 병원으로 가기 위해 아베드는 가장 먼저 물리적 장벽인 '검문소'와 마주합니다. 저자는 아베드의 여정을 따라가며 무장한 군인들, 차가운 금속 탐지기, 꽉 막힌 회전문, 그리고 그 앞에서 무력하게 기다려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물리적 장벽 뒤에 숨은 '제도의 장벽'입니다. 아베드는 서안 지구 신분증(초록색 ID)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 허가 없이는 이스라엘 관할 구역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반면, 예루살렘 영주권(파란색 ID)을 가진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죽어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군인들의 허가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저자는 이 신분증 색깔 하나가 생사를 가르는 권력이 되는 현실을 냉정하게 포착합니다.
미로 찾기가 된 아버지의 길 아베드는 군인에게 사정하고, 다른 경로를 찾고,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필사적으로 장벽을 넘으려 합니다. 이 과정은 마치 미로 찾기 게임처럼 묘사되지만, 그 대가는 목숨입니다. 저자는 아베드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며,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 장벽과 정착촌, 전용 도로들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영토를 조각내고 생활권을 단절시켰는지를 지리적으로 보여줍니다. 5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이 걸려 돌아가야 하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병원을 갈 수 없는 현실은 독자에게 깊은 답답함을 안겨줍니다.
비정한 관료주의와 무능한 자치 정부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해서도 아베드는 아들을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4부에서는 관료주의의 비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정보의 불일치, 보안상의 이유, 의료진과의 소통 부재 등 수많은 장벽이 그를 가로막습니다. 심지어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절차는 더디기만 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타들어가는 속마음과는 대조적으로 시스템은 차갑고 기계적으로 작동하며, 이는 시스템이 인간이 아닌 '통제'를 위해 존재함을 역설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무능력함 또한 드러납니다.
훼손된 존엄과 심리적 균열 네이선 스롤은 물리적 실체를 넘어, 그 장벽이 사람들의 내면에 심어놓은 심리적 장벽까지 탐구합니다. 검문소 앞에서 느껴야 하는 모멸감과 허가증을 구걸해야 하는 비참함은 아베드의 자존감을 갉아먹습니다. 아들을 찾기 위해 그는 자신의 존엄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장벽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내부에도 벽을 세운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ID를 가진 친척들과 서안 지구 ID를 가진 아베드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존재하며,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형성됩니다. 콘크리트 장벽은 무너뜨릴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쌓인 불신과 증오의 장벽은 쉽게 무너뜨릴 수 없음을 저자는 경고합니다.
정치적 논쟁을 넘어선 휴머니즘의 호소 결국 4부는 한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어디까지 비굴해져야 하는지, 그리고 그 비굴함을 강요하는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목격하게 합니다. 어떤 정치적 명분도 아픈 아이에게 달려가는 부모의 길을 막을 정당성은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4부가 던지는 침묵의 외침입니다. 아베드의 험난한 여정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가진 분열의 상징이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정의가 실종된 시대를 마주하게 됩니다.
신분증(ID) 시스템의 비극
녹색 신분증 (Green ID): 서안 지구 거주 팔레스타인인. 예루살렘 및 이스라엘 진입 불가 (허가증 필요).
파란색 신분증 (Blue ID):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 또는 이스라엘 시민. 상대적으로 이동이 자유로움.
→ 아베드는 녹색 신분증 소지자였기에, 예루살렘 병원에 있는 아들을 찾으러 갈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혼란은 계속됩니다. 신원 미상의 아이들, 붕대에 감겨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작은 몸들. 아베드는 그 속에서 아들 밀라드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맵니다. "혹시 이 아이가 내 아이인가?"라는 끔찍한 의심과 공포 속에서, 그는 다른 부모들과 함께 고통을 공유합니다.
5부 세 번의 장례식과 에필로그: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끝나지 않는 비극
제20장과 에필로그를 아우르는 5부 '세 번의 장례식'은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폐허를 비추며, 사고 이후의 애도 과정과 유가족들의 삶, 그리고 사고에 대한 사후 처리를 다룹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장례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매장 절차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복되는 슬픔과 집단적인 트라우마,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이전의 평범했던 삶과 영원히 작별해야 하는 ‘삶의 장례식’을 상징합니다.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의 장례식은 팔레스타인 사회 전체의 애도 물결로 이어졌지만, 그 슬픔의 무게는 오롯이 가족들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이야기는 아베드 살라마가 결국 아들 밀라드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시신은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했고, DNA 검사를 통해서야 비로소 아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 아들이 저기 방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절망적인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아베드의 세상은 무너져 내립니다. 아베드가 아들의 빈 침대를 보며 오열하는 장면, DNA 채취를 위해 면봉을 입에 넣는 과정에서의 무력감은 읽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팝니다. 신원이 확인되어 시신을 인도받는 과정조차 순탄치 않았으며, 아베드가 아들의 방에 들어가 남겨진 장난감을 바라보고 밀라드가 좋아했던 간식을 떠올리는 장면들은 어떤 웅장한 서사보다 더 깊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텅 빈 내면을 절제된 문장으로 전해줍니다.
장례식은 팔레스타인 사회의 슬픔과 정치적 분노가 폭발하는 장이 됩니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조의를 표하고 정치적 구호를 외치지만, 아베드에게는 그 모든 것이 공허한 울림일 뿐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관료들이 방문하여 위로와 지원을 약속하지만, 유가족들은 그들의 무능과 이스라엘에 대한 협조적 태도에 깊은 불신을 드러냅니다. 아베드의 사촌이자 이슬람 지하드 활동가였던 아부 지하드의 냉소적인 반응은, 사고가 이스라엘의 점령 탓이기도 하지만 이를 방치하고 부패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책임도 있다는 내부의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책은 또한 아들을 버스에 태워 보낸 죄책감에 시달리는 난시 카와스메(Nansy Qawasme)라는 또 다른 어머니의 사연을 통해 슬픔의 다양성을 조명합니다.
5부에서는 사고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려는 시도와 그 한계도 다루어집니다. 트럭 운전사는 기소되었지만, 도로를 방치한 당국이나 늦장 대응을 한 구조대에 대한 처벌은 미비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정의를 요구했지만,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보안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힘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 비극은 '불행한 사고'로 기록되고, 구조적 원인은 덮여버리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에필로그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베드의 삶은 영원히 바뀌어 버렸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며, 그의 가정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가정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파탄이 났고, 어떤 부모는 여전히 아침마다 아이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환상에 시달립니다. 저자는 비극이 뉴스에서 사라진 뒤에도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임을 강조합니다. 변한 것은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사실뿐, 그 도로에는 여전히 위험한 트럭들이 달리고 있고 검문소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고 있습니다.
네이선 스롤은 작가의 말과 감사의 말을 통해, 이 책이 단순한 르포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증언하는 기록물이 되기를 바랐음을 밝힙니다. 수년간의 심층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통해 완성된 이 책은 유가족들의 고통을 착취하지 않고 최대한 사실에 입각하여 진실을 전달하려 한 저자의 끈질긴 집념의 산물입니다.
결론적으로 5부와 에필로그는 이 비극이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시스템이 인간을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위협할 때, 그리고 특정 집단을 체계적으로 배제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사고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베드 살라마의 하루는 끝났지만,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책을 덮으며 독자는 단순히 안타까워하는 것을 넘어,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폭력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아베드 살라마의 눈물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슬픈 대답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복잡한 정치적 이슈를 지극히 인간적이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다루며,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하루를 통해 고통의 근원을 파헤칩니다. 남겨진 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비극은 멀리 있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경계하고 성찰해야 할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베드 살라마의 하루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 마음속의 장벽부터 허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핵심 요약: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은 단순한 사고 기록이 아닙니다. 하나의 비극을 통해 거대한 체제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현미경과도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아베드 살라마의 하루: 예루살렘 비극의 해부'는 우리가 뉴스로만 접하던 '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사가 갈리는 현실, 그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깊은 파동을 일으키길 바랍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그곳의 뉴스를 예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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