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결국 사람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닐까?" 저도 솔직히 말해서, 끔찍한 사건들이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오랜 통념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어요. 특히 홉스(Hobbes)가 말했던 것처럼, 문명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을 야만인이라고 믿어왔죠. 그런데 루저 브레그만(Rutger Bregman)의 이 책, '휴먼카인드: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를 읽고 나니,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잘못된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희망적이다'라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수많은 역사적 기록과 과학적 연구를 들이밀며 우리가 오랫동안 배워온 이야기가 사실은 '오류'였음을 증명해내는 그의 논리 전개는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이 독서 노트는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모든 분들께 이 책이 던지는 루저 브레그만 '휴먼카인드'의 핵심 메시지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인간의 선의가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서로에게 친절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현실주의'를 함께 탐험해 보실까요?
1. 파리 대왕이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 톤가 섬의 실제 이야기
우리가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을 빼놓을 수 없죠. 문명화된 소년들이 무인도에 갇히자 순식간에 야만인으로 변해 서로를 공격하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이 이야기는, 인간은 결국 통제되지 않으면 악해진다는 홉스적 관점의 완벽한 근거처럼 여겨졌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며 "역시 인간은 무서워"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루저 브레그만은 이 파리대왕 오류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심지어 1960년대 태평양의 톤가 섬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통해 소설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음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브레그만이 찾아낸 톤가 섬의 실제 이야기는 소설의 내용이 얼마나 허구적이며, 우리의 편견을 얼마나 강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어요.
1965년, 호주 시드니의 기숙학교를 다니던 6명의 소년이 보트를 훔쳐 항해를 나섰다가 폭풍우를 만나 난파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1년 3개월 동안 톤가 인근의 외딴 무인도 '아타(ʻAta)' 섬에서 생존했죠. 파리 대왕의 논리대로라면, 이 소년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분열하고, 결국 잔인한 폭력 속에 스스로를 파괴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년들은 함께 섬을 탐험하고 자원을 공유했습니다. 이들은 리더를 선출하지 않았고, 대신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들은 곧바로 공동체적인 규칙을 만들고 실행했다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노래를 부르고, 운동을 하고,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임무가 주어지면 며칠간 그 역할에만 집중했고, 만약 누군가 갈등을 일으키거나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는 모두가 모여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심지어 한 소년이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큰 사고가 있었는데도, 다른 소년들은 그를 극진히 간호하며 뼈가 붙을 때까지 돌봤습니다. 그들은 함께 불을 피우고, 빗물을 모으고, 새 둥지에서 알을 채취하며 지혜롭게 생존했습니다. 소설 속 소년들이 불을 끄트려 구조의 희망을 잃어버린 것과 달리, 톤가 소년들은 불씨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불을 지키기 위한 임무를 번갈아 수행했고, 불이 꺼질 뻔할 때마다 소년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 논쟁은 상대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었죠.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을 지배한 것은 상호 협력과 깊은 유대감이었습니다. 루저 브레그만은 이 실제 사례를 통해,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돕고 연대하려는 본성을 발휘한다는 자신의 핵심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우리가 소설을 진실로 받아들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이미 믿고 싶었던 이야기를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었죠. 이 책은 이 오래된 믿음, 즉 '인간 본성은 악하다'는 오해를 깨부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부의 도움 없이도 그들이 문명을 유지하고, 심지어 이전보다 더 성숙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우리의 본성에 대한 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희망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레그만은 톤가 소년들이 생존한 비결이 뛰어난 능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근본적인 친절함과 협력 능력에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인간의 진정한 본성이 연대와 협력에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반증이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살았는데,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머리가 띵 했어요. 우리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재난 상황이나 위기 상황에서도 결국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생존했다는 수많은 사례를 접하면서, 정말 우리가 가진 편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루저 브레그만의 이 통찰은, 단순히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을 넘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 예를 들어 분열과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느꼈습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싶네요. 이처럼,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이야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극도의 압박, 잘못된 교육, 그리고 '인간은 악하다'는 잘못된 통념(노세보 효과)에 영향을 받을 때 발생한다. 우리의 문제는 본성 자체가 아니라, 문명과 시스템의 결함에서 비롯된다.
2. 호모 퍼피(Homo Puppy)의 탄생: 친화적인 자의 생존 전략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논리 전개 중, 제게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바로 '호모 퍼피(Homo Puppy)'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아니, 인간을 강아지(Puppy)에 비유하다니!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가 제시하는 진화론적 증거를 따라가다 보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죠. 브레그만은 인간이 '지능적'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친화적'이고 '온순한' 특성 때문에 생존에 성공했다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이른바 '프렌들리스트의 생존(Survival of the Friendliest)' 이론이죠. 이 이론은 여우 길들이기 실험처럼 다양한 동물의 사례를 통해 뒷받침됩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가장 공격적이거나 고집 센 개체 대신, 가장 협력적이고 감정을 잘 읽는 개체를 선호했고, 이 친화적인 특성이 결국 인류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마가 평평하고, 얼굴이 작고, 턱이 덜 돌출된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라는 설명이었어요. 사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튼튼하고 큰 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결국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많은 가설이 있었잖아요? 브레그만은 네안데르탈인이 상대적으로 덜 친화적이었고, 호모 사피엔스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협력하고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단순히 도구 제작 기술이나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는 우리의 진정한 강점이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연대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천재보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이 훨씬 더 중요하잖아요? 루저 브레그만의 이 통찰은 현대 사회의 조직 문화나 교육 방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경쟁을 부추기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결국 집단의 생존과 발전에 더 유리하다는 거죠. 심리학적으로 봐도,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잖아요. 이 능력 자체가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존재로 진화해 왔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브레그만은 이 '호모 퍼피'의 특징이 인간의 폭력성을 낮추고 협력적인 성향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이기적인 악당'으로 보는 것은 실제 우리의 진화적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순하고 친화적인 종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안의 잠재된 선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화론적인 관점, 즉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사실은 '친절한 자가 가장 잘 살아남는다'는 논리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가질 때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강력한 처벌과 감시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죠. 브레그만의 이 분석은 희망의 역사라는 제목이 단순히 소망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가진 '사실'임을 증명하는 핵심적인 축이었습니다.
3. 인간은 역할에 지배당하는가? 스탠퍼드 실험의 노세보 효과 재해석
우리가 인간의 악한 본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하는 또 하나의 '전설'이 있습니다. 바로 1971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SPE Stanford Prison Experiment)이죠. 평범한 대학생들이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았을 때, 간수들이 사디스트로 돌변해 죄수들을 잔인하게 괴롭혔고, 결국 실험은 일주일도 안 되어 중단되었다는 이야기. 이 실험은 '상황의 힘'이 개인의 본성을 압도한다는, 즉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끔찍한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브레그만은 이 심리학 실험의 재해석을 통해, 우리가 믿어온 이 실험 역시 심각한 결함과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책에서 브레그만은 당시 실험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내부 녹취록을 자세히 파헤칩니다. 간수 역할의 참가자들이 스스로 악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실험 설계자였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간수처럼 행동하라', '죄수들을 깨뜨려라'와 같은 명확한 지침을 내렸다는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즉,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심취했다기보다는, 실험자의 기대에 부응하려 했거나, 혹은 '이 실험은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이다'라는 잘못된 믿음에 따라 연기했던 것에 가깝다는 것이죠. 이 실험을 통해 인간 본성이 악하다는 '기대'를 주입하는 것, 바로 노세보 효과(Nocebo Effect)가 작동했다고 브레그만은 주장합니다.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 개념인 노세보 효과는 '부정적인 기대'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현상을 말하는데, 스탠퍼드 실험과 같은 환경에서는 참가자들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 상황에서 악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믿게 만들어 실제로 잔인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브레그만은 역사적 통념뿐만 아니라, 가장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심리학 실험의 근거까지도 하나하나 무너뜨립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권위에 의한 조작된 이야기'에 현혹될 수 있는지에 대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실험은 수십 년간 교과서에 실리며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그 근거가 이토록 취약하고 심지어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어요. 브레그만은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 자체가 일종의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할 때, 우리는 더 많은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더 강한 통제를 원하게 되며, 결국 그러한 시스템이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거죠. 이 책은 이 잘못된 믿음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우리가 진정한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루저 브레그만 주장처럼, 스탠퍼드 실험의 진짜 교훈은 '상황이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가 아니라, '인간이 악하다는 믿음이 강요된 상황이 인간의 선의를 억압한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처럼 깊이 있는 재해석은 단순히 과거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감시 문화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브레그만은 인간의 악행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악행이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문명화된 불신', '권위적인 위계', 그리고 '다른 인간을 악당으로 보는 프레이밍'에서 비롯된 일종의 환경적 산물임을 강조합니다. 즉, 인간 본성 진화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4. 전쟁터에서 발견한 인간의 선의: 총을 쏘지 않는 병사들의 진실
전쟁만큼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은 없을 거예요. 저도 전쟁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파괴적인 면모에 몸서리를 치곤 했죠. 하지만 이 책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선의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통계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브레그만이 제시하는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보병 중 상당수가 실제로 적군에게 총을 쏘지 않았다는 비발사율에 대한 연구 결과입니다. S.L.A. 마셜(S.L.A. Marshall)의 연구에 따르면, 전투에 참여한 보병 중 불과 15~20%만이 실제로 적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나머지는 의도적으로 허공에 쏘거나 사격을 회피했다는 거죠. 전쟁이라는, '살인'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에서조차,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인간에게 치명적인 해를 가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는 증거였습니다. 이 사실은 저에게 '인간은 공격적이다'라는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군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훈련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꿨습니다. 사람 모양의 표적 대신, 실제 인간의 모습을 한 표적을 사용하고, 사격 과정을 조건반사적으로 만들어서, 병사들이 '인간을 해친다'는 본능적인 저항감을 극복하도록 만들었죠. 이처럼,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해치는 행위는 본성적이고 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고도의 훈련과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서만 가능한 '어려운 일'임을 브레그만은 강조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인간의 폭력성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왜 군대는 그 폭력성을 '가르쳐야' 했을까요? 그것은 폭력적인 행동이 우리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브레그만의 논리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또한, 브레그만은 전쟁 중에도 나타나는 '휴전'과 '비공식적인 평화'의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이 길어지면서 적군 병사들끼리 크리스마스에 비공식적인 휴전을 맺고 선물을 교환하거나 함께 축구를 했던 일화들은, 선의의 역사가 극한의 대립 상황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악마'로 보기보다는,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거죠. 이 비공식적 휴전은 장교들의 강한 명령으로 깨졌는데, 이는 위계와 통제가 사람들의 본능적인 연대감을 어떻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습니다. 결국, 브레그만의 관점에서 전쟁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폭발시키는 장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친화적인 본성을 억압하고 강제로 해악을 가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의 실패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책은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해줍니다. 우리가 '인간은 악하다'는 전제를 버리고, 인간이 가진 본연의 선의를 신뢰할 때, 전쟁을 포함한 모든 폭력적인 갈등을 다른 시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메시지가 저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전쟁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의 인간 본성은 연대와 공감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감동적이면서도 놀라웠습니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왜 스스로를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하는가?"
5. 권력은 왜 인간을 타락시키는가? 지배가 아닌 연결의 리더십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면, 왜 역사 속에는 그토록 많은 독재자와 폭군, 잔인한 지배자들이 존재했을까요? 브레그만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권력의 오작동에서 찾습니다. 그는 권력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인간의 선의를 억압하고 왜곡한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그는 '프렌들리스트의 생존' 개념을 다시 가져와, 초기의 인류 사회에서는 친화적이고 협력적인 리더가 선호되었지만, 문명이 발전하면서 교활하고 기만적이며 때로는 냉혹한 개체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역선택'이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스스로를 특별하고 우월하다고 느끼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하며,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논리적으로 풀어냅니다. 권력은 때때로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브레그만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저도 살면서 권력을 가지게 된 후 변해버린 사람들을 본 경험이 있는데, 그들이 원래부터 악했다기보다는, 권력이 주는 심리적 거리감과 특권 의식이 인간의 본연적인 공감 능력을 억눌렀다는 브레그만의 해석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브레그만은 위에서 아래로의 '지배'가 아닌, 옆에서 옆으로의 '연결'을 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합니다. 진정한 리더는 명령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를 얻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협력하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재난 상황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대응한 사례들을 보면, 중앙의 강력한 통제보다는 현장 전문가들의 자발적인 협력과 분산된 권한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평소에 '강력한 리더'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을 깨부수는 통찰이었습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 주장처럼, 우리가 권력을 감시하고 분산시키며, 조직 내에서 상호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선의를 보호하고 악행의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결국, 문제는 '인간'이 아니라 '시스템'입니다. 인간 본성이 친화적이라는 전제 위에서 설계된 사회는, 필연적으로 더 안전하고 공정하며, 행복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조직과 정치 시스템이 왜 그렇게 많은 문제를 겪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의 시스템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전제 위에서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 시스템 자체가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죠.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우리가 이제 이 오래된 패러다임을 버리고, 인간의 선의를 신뢰하는 새로운 사회 설계 원칙을 적용해야 할 때라고 역설합니다.
| 관점 | 핵심 주장 | 대표 예시 (브레그만 재해석) |
|---|---|---|
| 오랜 통념 (홉스적) | 인간은 이기적이고 악하며, 문명과 통제가 없으면 야만인이 된다. | '파리 대왕' 소설, 스탠퍼드 감옥 실험 |
| 새로운 현실주의 (브레흐만) | 인간은 근본적으로 친화적이고 선하며, 악행은 환경과 잘못된 믿음(노세보 효과)의 산물이다. | 톤가 섬의 소년들, 전쟁터의 비발사율 |
6. 공감 능력의 이면: 우리는 왜 타인을 '악당'으로 프레이밍하는가?
이 책은 우리가 가진 공감 능력이 양날의 검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칩니다. 인간은 호모 퍼피로서, 타인과 연결되고 공감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이 공감 능력이 때로는 '내 집단'에만 한정되어 작동하는 '편향적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즉,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지만, '외부인'이나 '적'으로 규정된 집단에게는 공감의 문을 닫아버리고 심지어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역사적으로 많은 학살이나 전쟁이 이처럼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프레이밍, 즉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 '저들은 악하다'는 믿음을 주입하는 과정을 통해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부분이 현대 사회의 혐오와 갈등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치인이나 미디어가 특정 집단을 '악당'으로 프레이밍할 때, 우리 안의 친화적인 본성이 일시적으로 오작동하며 적대감과 폭력성을 표출하게 된다는 것이죠. 브레흐만은 이를 막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희소식'을 더 많이 다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뉴스가 끊임없이 재난과 갈등, 부정적인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할 때, 독자는 세상이 혼란하고 위험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고, 이는 결국 불신과 두려움을 증폭시켜 노세보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거예요. 뤼트허르 브레흐만 주장의 핵심은, '세상은 악하다'는 미디어의 프레이밍이 바로 우리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환경적 요인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는 전 세계의 긍정적인 변화와 협력 사례를 지속적으로 조명하는 '건설적인 저널리즘(Constructive Journalism)'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미디어가 우리의 본성을 신뢰하고, 좋은 소식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희망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세상은 원래 그래'라고 체념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소비하는 정보가 우리 자신의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까지도 왜곡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브레흐만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의 필터링을 조절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독려합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현실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주의를 위한 실용적인 지침서나 다름없었습니다. 타인을 '악당'으로 프레이밍하는 순간, 우리의 가장 친화적인 본성이 멈춘다는 브레그만의 통찰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갈등 상황에 적용해 볼 만한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7. 아이들을 믿으세요: 진정한 민주주의와 교육의 힘
루저 브레그만은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사회 시스템, 특히 교육과 정치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는 아이들을 '통제해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선의를 가진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네덜란드의 비옥한 땅에 위치한 '보스 스쿨(The Boss School)'과 같은 혁신적인 교육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교사는 '권위자'가 아닌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훨씬 더 책임감 있고, 창의적이며, 공동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는 '아이들은 통제하지 않으면 방종해진다'는 기존의 교육 철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였어요. 브레그만은 이처럼 교육 현장에서의 신뢰가 아이들의 본연적인 선의와 잠재력을 극대화한다고 설명합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를 하는 행위를 넘어, 시민들의 지혜와 선의를 신뢰하고 권한을 분산시키는 시스템이라고 역설합니다. 예를 들어, 시민 배심원제와 같이, 평범한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가지고 토론할 때, 전문가들 못지않게 합리적이고 공정한 결정을 내린다는 사례들을 제시합니다. 이는 '대중은 우매하다'는 엘리트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며, 일반 대중의 집단 지성과 친화적인 본성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줍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결국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을 불신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시민들을 불신하기 때문에 모든 권력을 중앙에 집중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루저 브레그만 주장처럼, 우리가 인간의 선의를 전제하고 시스템을 설계한다면, 그 시스템은 훨씬 더 유연하고 탄력적이며, 위기에 강한 구조를 가질 수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의 작은 변화가 미래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는, 저에게 교육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교육 방식은, '호모 퍼피'의 협력적인 본성을 가장 잘 계발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브레그만은 단순히 철학적인 논의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까지 제시함으로써 그의 희망의 역사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중요한 섹션이었습니다.
8. 희망은 새로운 현실주의다: 루저 브레그만의 10가지 규칙
이 책의 마지막은 브레그만이 제시하는 새로운 현실주의를 위한 10가지 실천 규칙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규칙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그리고 사회 시스템을 설계할 때 '인간은 선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과학과 역사를 통해 증명된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가장 '현실적인' 행동 지침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저는 이 10가지 규칙이 앞으로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규칙인 '다른 사람이 악하다고 가정하지 말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요구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악의는 오해나 실수, 혹은 시스템의 결함에서 비롯된다는 브레그만의 통찰을 바탕으로,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해석할 때 친절함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외에도, 그는 '뉴스를 무시할 것', '생각을 바꾸는 용기를 가질 것',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것'과 같은 다소 도발적이면서도 심오한 규칙들을 제시합니다. '뉴스를 무시할 것'이라는 규칙은 앞에서 논의했듯이, 부정적인 사건만을 부각하는 기존 미디어의 프레이밍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회복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정보의 소비 방식을 스스로 통제함으로써, 내면의 불신과 공포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것'이라는 규칙은 인간이 원래 친화적이고 협력적인 존재인 '호모 퍼피'임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이기적인 악당'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을 멈추라는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브레그만의 10가지 규칙은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사회 시스템의 설계까지 아우르는,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실천 가능한 변화의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저는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가 가진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이라는 낡은 짐을 내려놓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10가지 규칙을 삶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를 더 행복하고, 주변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브레그만이 말하는 희망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가장 냉철하고 합리적인 새로운 현실주의입니다. 우리가 낡은 불신을 버릴 때, 비로소 인간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이 책을 통해 얻게 되었습니다. 루저 브레그만의 통찰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갈등과 문제의 해답이, 결국 우리 안의 선의를 신뢰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9. 절망적인 순간, 인간은 이기적인가? 재난 속 연대의 증거들
재난 영화나 종말론적인 이야기를 보면, 사람들은 항상 서로를 배신하고 물건을 약탈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런 대중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 머릿속에는 위기가 닥치면 인간의 야만적인 본성이 드러날 것이라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죠. 하지만 루저 브레그만은 역사적인 대규모 재난 사례들을 통해 이러한 통념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지를 폭로합니다. 그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9/11 테러, 심지어 런던 대공습과 같은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조차, 일반 시민들이 보여준 행동은 무질서와 약탈이 아닌 압도적인 상호 협력과 이타심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런던 대공습 당시, 사람들은 폭격 후에도 질서를 유지하고 자발적으로 구조 활동에 참여했으며, 패닉이나 무정부 상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와 경찰의 불신이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브레그만은 지적합니다. 특히, 그는 재난 상황에서 가장 많이 퍼지는 소문, 즉 '대규모 약탈과 무질서'에 대한 보도가 사실은 과장되었거나 아예 거짓인 경우가 많았음을 보여주며,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이밍을 유지하려는 시스템의 노력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거나,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부풀린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희망의 역사라는 것이 단순히 과거의 미담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빛난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찾아내는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브레그만은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연대와 이타심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진화적 본성인 '호모 퍼피'의 친화적인 특성이 발현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집단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수적이며, 위기의 순간에 이 협력 본능이 최대치로 발휘된다는 것이죠. 루저 브레그만 주장처럼, 우리가 재난 상황을 준비할 때 '인간은 이기적일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면, 우리는 불필요하게 통제와 감시 시스템을 강화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습니다. 대신, '인간은 서로 도울 것이다'라는 전제 하에 시스템을 설계하면,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고 권한을 분산시켜, 공동체가 위기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책은 절망적인 재난 상황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성, 즉 이타심과 연대감이 빛을 발하는 순간임을 증명하며, 우리에게 서로를 신뢰할 용기를 줍니다.
10. 마무리하며: 우리가 가진 가장 위대한 힘, 서로를 향한 신뢰
루저 브레그만의 '휴먼카인드'는 단순한 책을 넘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시각을 바꿔놓는 관점의 혁명이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홉스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 본성은 악하다'는 전제 위에 세상을 이해하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톤가 섬 소년들의 실제 이야기부터,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숨겨진 진실, 그리고 전쟁터 병사들의 비발사율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통념들이 사실은 취약한 근거 위에 세워진 '이야기'였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브레그만은 우리의 진화적 성공이 '지능'이나 '공격성' 때문이 아니라, '친화성' 때문이었다는 '호모 퍼피' 이론을 제시하며, 인간 본성 진화의 역사를 새롭게 씁니다. 그의 주장은 결국 하나로 수렴됩니다. 우리가 서로를 악하다고 믿는 순간, 그 믿음 자체가 노세보 효과처럼 부정적인 현실을 창조하며, 시스템의 악의가 인간의 선의를 억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새로운 현실주의를 받아들이고, 이 전제 위에서 사회와 조직을 재설계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분산시키고, 투명성을 높이며, 타인의 행동을 해석할 때 선택적 공감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우리가 현재의 복잡하고 갈등 많은 사회를 헤쳐나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세상이 조금 더 밝고 희망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은 기술이나 돈이 아니라, 바로 서로를 향한 근본적인 신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세상의 비관적인 소식에 지쳐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우리가 얼마나 멋진 종족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얼마나 밝은 미래가 놓여있는지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루저 브레그만 휴먼카인드의 메시지를 마음속에 새기고, 친절함과 연대의 힘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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