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Science[기술과 과학]/Matter & Life [물질과 생명]

뇌가 만든 거대한 착각, 시간의 실체를 파헤치다 (feat. 카를로 로벨리)

소음 소믈리에 2026. 3. 1.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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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요약
시간은 인간의 뇌가 만든 환상이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의 거장 카를로 로벨리가 밝히는 시간의 실체. 엔트로피와 양자 역학이 그려내는 시간 없는 세상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우리가 알던 시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 법을 지금 확인해보세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루프 양자 중력 이론으로 본 뇌의 환상과 3가지 진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요즘 시간을 보면서 좀 답답하고 무력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맨날 시계를 보며 1분 1초에 쫓기고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울 보는 것도 스트레스였거든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야속하고 가끔은 과연 내 인생이 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바로 그때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The Order of Time라는 책을 만났어요.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제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지 뭐예요. 단순히 물리학 이론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엄청난 깊이의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 통찰을 근거로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흐르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서 정말 놀랐어요. 이 책은 저처럼 시간의 강박에 지쳐있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와 해방감을 선물해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오늘은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 그리고 왜 이 책이 제 인생 책이 되었는지 제 솔직한 후기를 아주 길고 자세하게 들려드릴게요.

 

Part I The Crumbling of Time 시간의 붕괴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받았던 충격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시간의 특성들이 현대 물리학의 발전과 함께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마치 제가 딛고 서 있던 단단한 땅이 사실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죠. 로벨리는 1부에서 우리가 시간의 본질이라고 굳게 믿었던 유일성 방향성 독립성이 사실은 근사적인 통계적 결과일 뿐임을 너무나 명쾌하게 증명해줘요. 이건 단순히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철학적인 치유의 시간이었답니다.

유일성의 상실 (Loss of Unity)

여러분도 저처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고 생각하셨죠. 부자의 시간이나 빈자의 시간이나 똑같이 하루 24시간이라고요. 저도 그렇게 믿고 살았어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이 공평함마저 깨뜨렸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로벨리는 산 위에서 사는 사람과 해수면에서 사는 사람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시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데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더라고요.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중력이 약한 곳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니 믿어지시나요. 이것은 철학적 비유가 아니라 엄연한 물리적 사실이라고 해요. 실제로 정밀한 원자시계는 바닥에 놓았을 때와 탁자 위에 놓았을 때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는 데이터를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지구라는 거대한 질량 덩어리는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영향으로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죠.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시간의 지연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물체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으로 낙하하려는 성질이 있다는 설명에서 저는 무릎을 탁 쳤어요. 우리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발 밑의 시간이 머리 쪽의 시간보다 느리게 흐르기 때문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즉 중력은 곧 시간의 속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지점에서 저는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거대한 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각자의 위치와 운동 상태에 따라 무수히 많은 고유 시간이 존재할 뿐이라는 거죠. 당신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미세하게나마 어긋나 있으며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의 결을 타고 흐르는 독립적인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이로써 시간은 우리를 가두는 보편적인 무대 배경이 아니라 각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고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실체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물리학자의 시선

물체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곳으로 낙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물건을 손에서 놓았을 때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지구가 당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물체 자체가 시간이 느린 곳(지구 중심)을 향해 가려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Loss of Direction 방향성의 상실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의 화살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진리처럼 보이죠.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고 깨진 유리잔은 다시 붙지 않잖아요. 우리는 늙어가고 기억은 과거만을 향하니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물리학의 기본 방정식들인 뉴턴의 운동 법칙 맥스웰의 전자기학 방정식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에는 시간의 방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t를 -t로 바꾸어도 식은 완벽하게 성립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제 눈을 의심했어요. 미시 세계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니 입자들의 충돌 영상을 거꾸로 돌려도 우리는 어떤 위화감도 느낄 수 없다니 정말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이 강력한 시간의 흐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로벨리는 19세기 물리학자 볼츠만과 엔트로피 개념을 소환해서 설명해주는데 이 부분이 정말 압권이었어요. 시간의 방향성은 세상의 기본 성질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 나타나는 통계적 효과라는 거예요.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척도이며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게 유지되죠. 바로 이 엔트로피의 증가 방향이 곧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의 화살이라는 설명에 저는 전율을 느꼈어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었어요. 엔트로피가 낮다는 것은 그 상태가 특별하다는 것을 의미해요. 과거의 엔트로피가 낮았던 것은 우주가 정말로 특별하게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흐릿하기 때문일까요. 로벨리는 카드 놀이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는데 이해가 쏙쏙 되더라고요. 빨간색 카드와 검은색 카드가 완벽하게 정리된 상태는 특별해 보이지만 섞으면 무질서해지죠. 하지만 카드의 색깔이 아니라 카드의 숫자나 무늬 등 다른 기준으로 보면 섞인 상태 역시 특정한 질서를 가진 특별한 상태일 수 있다는 거예요. 즉 무질서와 질서의 구분 그리고 엔트로피의 증가는 우리가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보고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일 수 있다는 것이죠. 결국 시간의 방향성은 우주의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관찰자가 세상을 희미하게 인식함으로써 생겨나는 주관적 현상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저는 왠지 모를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The End of the Present 현재의 종말

지금 이 순간 우주 저 멀리 안드로메다 은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저는 가끔 밤하늘을 보며 이런 상상을 하곤 했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질문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로벨리는 우주 전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해요. 빛의 속도는 유한하고 정보는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우리가 보는 안드로메다 은하는 250만 년 전의 모습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안드로메다는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답이 없다는 건 충격이었어요.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동시성은 상대적이라고 해요. 나에게 동시인 사건이 당신에게는 과거일 수도 있고 미래일 수도 있다는 거죠. 시공간 다이어그램에서 우리는 각자의 광원뿔 안에 갇혀 있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저는 인간의 고독과 연결감을 동시에 느꼈어요. 나의 현재와 인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며 그 밖의 영역은 나의 현재와 무관한 과거도 미래도 아닌 모호한 중간 지대라는 사실이 참 묘하더라고요. 우주가 거대할수록 이 중간 지대는 넓어진다고 해요. 화성에 있는 탐사선과 통신할 때 발생하는 십여 분의 시차는 기술적인 지연이 아니라 근본적인 현재의 부재를 의미한다는 말에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기껏해야 우리 주변의 아주 좁은 영역에 국한된 근사적인 개념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현재의 단면을 잘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마치 둥근 지구 위에서 위쪽이라는 방향이 절대적이지 않은 것처럼 우주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비유가 정말 와닿았어요. 이로써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수많은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물망 구조임이 드러났고 저는 그 그물망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기분을 느꼈답니다.

Loss of Independence 독립성의 상실

저는 뉴턴처럼 시간이 우주의 물질이나 사건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흐르는 절대적인 실체라고 믿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빈 우주에서도 시간은 똑딱똑딱 흐를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공간과 시간을 물질과 분리할 수 없는 시공간이라는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시켰다는 내용을 읽고 제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어요.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시공간은 중력장 그 자체라고 해요. 중력장은 전자기장처럼 물리적인 실체이며 물질의 분포에 따라 휘어지고 늘어난다는 설명은 정말 sf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했어요.

시간은 무대 뒤에 숨어 있는 배경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춤추는 주인공 중 하나라는 표현이 너무 멋지지 않나요. 물질이 없으면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니 정말 놀라웠어요. 정확히 말해 시간과 공간이라는 중력장은 물질과 상호작용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한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시간의 독립성 상실이라는 건데 시공간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물렁물렁한 연체동물처럼 유연하다는 비유가 정말 찰떡이었어요.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간이 거의 멈추다시피 하고 초기 우주에서는 시공간이 요동친다는 사실을 통해 이제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기하학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Loss of Independence 독립성의 상실

시간의 붕괴를 완성하는 마지막 타격은 양자역학에서 왔어요. 로벨리의 전문 분야인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시공간조차 양자화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부분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해요.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듯이 시간과 공간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인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예요.

이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에요. 영화 필름이 정지된 사진들의 연속이듯 시간 역시 불연속적인 톡 톡 톡 튀는 순간들의 나열이라는 설명에 저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이 최소한의 시간 간격을 플랑크 시간이라고 부르며 대략 10의 -44승 초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찰나라고 해요. 이 미시적인 수준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도약한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마치 마법처럼 느껴졌어요.

또한 양자역학의 중첩 원리는 시공간에도 적용된다고 해요. 시공간은 하나의 확정된 모양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양이 확률적으로 중첩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거죠. 과거와 미래 인과관계조차 양자적 불확정성의 지배를 받는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사건 A가 사건 B보다 먼저 일어날 수도 있고 동시에 나중에 일어날 수도 있는 기묘한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로벨리가 말하는 시간의 양자적 본질이었어요. 결국 1부를 다 읽고 나니 저는 매끄럽고 연속적이며 방향성을 가진 보편적인 시간이라는 개념이 우리 뇌가 만들어낸 거시적인 근사치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고 오히려 그 사실 덕분에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Part II The World without Time 시간이 없는 세상

시간이라는 견고한 틀이 무너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요. 로벨리는 2부에서 시간 변수 t가 사라진 근본적인 물리 세계를 그려내는데 처음에는 좀 두려웠지만 읽을수록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이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근본적인 전환이었어요. 우리는 이제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해요.

The World Is Made of Events Not Things 세상은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세상을 돌 나무 책상 같은 사물들의 집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저도 그랬어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그 정체성을 유지하며 존재한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로벨리는 세상의 기본 구성 요소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라고 주장해요. 돌멩이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면서요. 그것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일어나는 미세한 사건들의 집합이며 잠깐 동안 형태를 유지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어요.

사물은 명사이고 사건은 동사라는 비유가 정말 탁월했어요. 세상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가득 차 있다는 거죠. 입자의 충돌 빛의 진동 별의 폭발 그리고 우리의 생각까지 모든 것은 일어나는 사건들이에요. 양자역학은 입자를 고정된 점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묘사한다고 해요. 전자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물체가 아니라 이곳에서 나타나고 저곳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이라는 거죠.

사물은 존재한다라고 말하지만 사건은 일어난다라고 말하죠. 시간이 없는 세상에서 진정한 실체는 일어나는 사건들의 그물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저 자신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인간 역시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 즉 거대한 사건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변화 그 자체를 받아들이게 하는 지혜를 줘요. 세상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 이 문장을 저는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매일 읽고 있답니다.

The Inadequacy of Grammar 문법의 부적절함

우리의 언어는 시간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잖아요.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이라는 시제 없이는 문장을 만들기가 어려우니까요. 이것은 우리가 시간을 본능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 언어에 깊이 박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요. 하지만 시간이 근본적인 실체가 아닌 세상 시간 없는 물리학의 세계를 설명하기에 우리의 언어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로벨리의 지적에 깊이 공감했어요.

로벨리는 고대 철학자들과 현대 물리학자들의 고뇌를 연결해주는데 정말 흥미로웠어요. 파르메니데스는 변화가 없는 영원한 존재를 주장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고 주장했죠.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이 둘의 통합을 시도한다고 해요.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처럼 그 정적인 관계망 속에서 변화와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시간 변수 t 없이도 세상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요. 예를 들어 공이 굴러가는 현상을 시간 t에 따른 위치 x(t)로 표현하는 대신 공의 위치와 공의 회전 각도 그리고 공기 분자들의 상태 등 변수들 간의 상관관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시간을 소거한 물리학이라는 건데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우리는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지휘자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악기들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박자를 맞추듯 세상의 모든 변수들은 서로에게 반응하며 변화한다는 비유가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개념 비교 고전적 세계관 (뉴턴) 양자 중력 세계관 (로벨리)
구성 요소 사물 (Things) 사건 (Events)
시간의 성격 절대적, 연속적 배경 상대적, 양자화된 알갱이
동역학 시간에 따른 상태 변화 변수들 간의 관계 (Relation)

Dynamics as Relation 관계로서의 동역학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의 핵심은 공간 양자들 사이의 관계망 즉 스핀 네트워크라고 해요. 공간은 텅 빈 상자가 아니라 이 양자들의 연결 관계 그 자체라는 설명이 정말 심오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치가 아니라 관계라는 점이죠. 어떤 입자가 어디에 있다는 말은 다른 입자와 인접해 있다는 뜻일 뿐 절대적인 좌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로도 다가왔어요.

시간 없는 세상에서의 동역학은 이 관계들의 변화를 기술해요. 스핀 네트워크가 진화하여 스핀 폼 Spin Foam을 형성한다고 하는데 이름부터가 너무 시적이지 않나요. 이것은 시공간의 역사를 나타내는 거품과 같은 구조래요. 이 거품 속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융합되어 있으며 입자의 이동 경로는 확정된 선이 아니라 확률적인 구름처럼 퍼져 있다는 설명을 읽으며 저는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했어요.

이 세상에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우리가 아는 선형적인 인과율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해요. 미래가 과거를 결정할 수도 있고 원인과 결과가 서로 얽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지만 수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일관성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로벨리는 이러한 관계론적 관점이 불교의 연기설과도 맞닿아 있다고 넌지시 암시하는데 저는 여기서 과학과 종교가 만나는 지점을 본 것 같아서 가슴이 벅찼어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없다는 깨달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이 거대한 관계망의 극히 일부가 드러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저를 겸손하게 만들더라고요. 이로써 2부는 저의 견고한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관계와 사건 중심의 유동적인 우주를 제 눈앞에 펼쳐 보여주었어요.

Part III The Sources of Time 시간의 원천

시간이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가 느끼는 이 생생한 시간의 흐름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도 이 부분이 너무 궁금했어요. 로벨리는 3부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요. 물리학에서 뇌과학과 인지과학으로 시선을 돌려 시간의 탄생지를 추적하는데 정말 소름 돋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시간은 우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우리의 무지와 기억 속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Time Is Ignorance 시간은 무지다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통찰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은 무지라니요.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즉 엔트로피의 증가는 미시적인 입자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에 저는 한동안 책을 덮고 멍하니 있었어요. 만약 우리가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고 계산할 수 있는 라플라스의 악마와 같은 능력을 가졌다면 엔트로피라는 개념은 필요 없을 것이고 그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동등하게 결정되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거시적인 존재잖아요. 우리는 물 한 컵을 볼 때 수조 개의 물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지 못해요. 단지 온도와 압력 같은 평균적인 값 즉 거시 상태만을 인식하죠. 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시 상태의 수 경우의 수가 적은 상태에서 많은 상태로 변해가는 과정이 바로 엔트로피의 증가이며 이것이 우리에게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을 준다는 설명은 정말 천재적이었어요.

볼츠만의 통찰은 여기서 빛을 발해요. 엔트로피는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우리가 시스템을 구분하고 관찰하는 방식에 의존하는 상대적인 양이라는 거죠. 우리가 우주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특수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만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 즉 시간은 우주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우리와 우주 사이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제한된 정보 처리 능력이 만들어낸 흐릿한 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어요. 우리가 세상을 상세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흐릿함 속에서 시간이라는 환영이 피어오른다는 말이 너무나 시적으로 다가왔거든요.

Perspective 관점

시간의 흐름은 전 우주적인 현상이 아니라 국소적인 현상이라는 점도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우리는 우주의 아주 작은 구석 엔트로피가 유독 낮았던 특이한 초기 조건을 가진 태양계라는 환경에서 진화했잖아요. 생명은 이 낮은 엔트로피를 섭취하고 높은 엔트로피를 배출하며 그 낙차를 이용해 생존하는 과정이라는 생물학적 설명이 물리학과 만나는 순간이었어요.

로벨리는 이를 숲의 비유로 설명해 주는데 정말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평평한 평원 열평형 상태의 우주에서는 어디로 가나 똑같지만 어쩌다 움푹 패인 계곡 낮은 엔트로피 상태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물이 흐르고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바로 그 계곡에 살고 있기 때문에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시간의 흐름을 세상의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라는 설명에 저는 무릎을 쳤어요.

우리의 관점은 인덱시컬 indexical 즉 지표적이라고 해요. 여기 지금 나라는 단어는 객관적인 좌표가 아니라 발화자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잖아요. 시간의 흐름 역시 인류의 종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가리키는 지표적인 성질을 가진다는 거죠. 우주 전체에는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없지만 우리라는 작은 부분계 subsystem 안에서는 명확한 화살표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은 착각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너무나 리얼한 현실이라는 점이 중요해요. 마치 지구가 둥글고 회전하지만 우리에게는 평평하고 멈춰 있는 대지가 삶의 터전인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으면서 저는 비로소 시간과 화해할 수 있었어요.

주의하세요!

시간이 환상이라는 말이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지개가 빛의 굴절이 만든 광학적 현상일지라도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듯, 시간 또한 우리의 존재 양식이자 삶의 조건으로서 여전히 중요합니다. 물리학적 실체가 아니라는 것과 우리의 경험이 가짜라는 것은 다릅니다.

What Emerges from a Particularity 특수성에서 등장하는 것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에너지라고 생각했는데 로벨리는 에너지는 보존된다고 말해요.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죠. 그렇다면 우리를 지치게 하고 늙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였어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열에너지로 바뀌는 과정 즉 질서가 무질서로 흩어지는 과정이 바로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태양에서 오는 광자들은 낮은 엔트로피를 가지고 있어요. 지구는 이를 받아들여 식물을 키우고 기상을 일으킨 뒤 더 많은 수의 더 낮은 에너지를 가진 광자 적외선 형태로 우주로 내보내죠. 에너지는 들어온 만큼 나가지만 그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해요. 생명 활동 문명의 발전 심지어 우리의 생각까지 모든 것은 이 엔트로피 증가 과정에 편승하여 일어나는 소용돌이라이라는 표현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시간은 이 열역학적 과정의 부산물이라고 해요. 로벨리는 이를 열적 시간 가설 Thermal Time Hypothesis로 정식화하는데요. 거시적인 상태에만 의존하는 열역학적 시스템에서는 시간 변수가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다는 거예요. 즉 시간이 있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열의 이동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변수가 등장한다는 역발상이 저에게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어요.

The Scent of the Madeleine 마들렌의 향기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마들렌 과자의 향기를 맡으며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잖아요. 로벨리는 이 문학적 순간을 신경과학과 연결하는데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물리학적 시간이 붕괴된 자리에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의 경험은 전적으로 뇌의 작용이라는 거예요.

우리의 뇌는 과거의 흔적을 현재에 저장하는 기계라고 해요. 기억은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 우리 뇌 시냅스에 남아 있는 물리적인 자국이라는 사실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우리는 이 자국들을 연결하여 서사를 만들고 자신이라는 자아를 구성하죠. 뇌는 또한 미래를 예측하는 기계이기도 해요.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시뮬레이션하고 대비하니까요.

기억 과거과 기대 미래 사이에서 뇌는 현재라는 좁은 틈을 확장하여 시간의 지속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에 저는 제가 느끼는 시간의 정체를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현재 들리는 음만을 듣지 않잖아요. 방금 지나간 음의 잔향과 앞으로 나올 음에 대한 기대가 합쳐져 멜로디라는 시간적 형태를 인지하는 것처럼요.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시간은 마음속에 있다는 철학적 명제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어요. 우리의 의식은 흐르지 않는 우주의 사건들을 엮어 흐르는 시간이라는 영화를 상영하는 영사기와 같다는 비유는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요.

The Source of Time 시간의 원천

결국 시간의 원천은 우리 자신이었어요. 인간은 시간의 관찰자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라는 말에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우리의 몸 우리의 뇌 우리의 감정은 수십억 년 동안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결과물이잖아요.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주체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어요.

로벨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과학이 시간의 객관적 실체를 부정했다고 해서 우리의 주관적 경험이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요. 노을이 지는 것이 지구가 도는 현상일 뿐이라 해도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듯이 시간이 뇌의 환상이라 해도 우리의 삶 사랑 슬픔은 여전히 진실하다는 따뜻한 위로에 저는 눈물이 날 뻔했어요. 우리는 이 환상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이제는 그 환상의 정체를 알고 있잖아요. 이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해방감을 주더라고요. 영원한 시간의 굴레에 갇힌 노예가 아니라 찰나의 순간들을 엮어 의미를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The Sister of Sleep 잠의 자매

죽음은 시간의 끝이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시간이 멈추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일 거예요.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로벨리는 잠의 자매라고 불리는 죽음을 부드럽게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줘요.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상에서 탄생과 죽음은 시작과 끝이 아니라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이라는 거죠.

바흐의 음악이 끝난다고 해서 그 음악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해요.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하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말. 우주의 영원한 관점 Sub specie aeternitatis에서 보면 우리의 삶은 시공간 속에 영원히 새겨진 하나의 완성된 사건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용기를 주었어요. 두려움은 미래를 예측하려는 뇌의 본능에서 오지만 시간의 본질을 깨달은 이성은 그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는 걸 배웠거든요. 우리는 별의 먼지에서 와서 잠시 질서를 이루고 춤을 추다가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존재들이에요. 이 우주적 순환 속에서 시간은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요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답니다.

 

상대성 이론 시간 지연 계산기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은 낮은 곳에 사는 사람보다 시간이 빨리 흐릅니다. (빨리 늙습니다.)
아주 단순화된 모델을 통해 그 차이를 느껴보세요.

나의 사유 한스푼

로벨리의 책은 방대한 주석과 참고문헌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는 아낙시만드로스부터 아인슈타인 볼츠만 그리고 현대의 루프 양자 중력 이론가들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지적 탐험을 꼼꼼하게 기록했더라고요. 이는 자신의 이론이 독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바라본 풍경임을 증명하는 겸손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인덱스를 따라가다 보면 물리학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을 넘나드는 그의 지적 넓이에 감탄하게 되실 거예요. 과학 서적의 탈을 쓴 이 인문학적 에세이는 저에게 단순한 지식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 주었답니다.

로벨리의 책에서 얻은 통찰은 바로 이것입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지만 우리는 흐릅니다. 그 흐름은 외부의 강압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열망과 기억이 만들어낸 춤입니다. 그러니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에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바로 시간입니다. 당신의 뇌가 당신의 열정이 당신의 사랑이 시간을 만듭니다. 우리는 흩어지는 엔트로피의 파도 위에서 잠시 균형을 잡고 서핑을 즐기는 존재들입니다. 그 파도가 결국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멋지게 파도를 타는 것 그것이 바로 카를로 로벨리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답게 사는 법일 것입니다.

핵심 요약 정리

카를로 로벨리의 여정을 마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 가지 핵심 메시지를 정리합니다. 복잡한 수식은 잊더라도 이 통찰만큼은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1. 유일한 시간은 없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중력과 속도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며, 우주 어디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세상은 사물이 아닌 사건이다: 우주는 고정된 돌멩이들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사건들의 거대한 네트워크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오직 과정만이 있습니다.
  3. 시간은 우리 마음의 그림자다: 우리가 느끼는 과거와 미래의 흐름은 엔트로피와 뇌의 기억 기능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시간은 우주의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특수한 관점이 만들어낸 환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

Q: 시간이 환상이라면 왜 우리는 늙어가나요?
A: 시간이 환상이라는 것은 뉴턴이 말한 절대적인 시간이 없다는 뜻이지, 변화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 속에 있는 열역학적 존재이기 때문에,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노화)으로 변화를 겪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Q: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무엇인가요?
A: 일반 상대성 이론(거시 세계)과 양자 역학(미시 세계)을 통합하려는 현대 물리학의 시도 중 하나입니다. 이 이론은 공간 자체가 아주 미세한 고리(Loop)들로 엮여 있으며, 시공간이 연속적이지 않고 알갱이처럼 양자화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Q: 이 책은 전공자만 읽을 수 있나요?
A: 아닙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수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언어로 물리학을 설명합니다. 어려운 개념이 등장하지만, 시적인 비유를 통해 일반 독자도 그 핵심 정서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을 덮으며 문득 창밖을 보니 달이 저물고 있습니다. 물리학적으로는 지구가 자전하며 태양과의 각도가 달라진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겠지만, 제게는 하루가 지나가는 아쉽고도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로벨리가 우리에게 선물한 것은 차가운 허무가 아니라, 우리가 시간이라는 주관적인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라는 따뜻한 위로가 아닐까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그저 복잡한 이론으로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꾸는 계기가 되었나요. 문득 여러분의 생각도 듣고 싶어집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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